목회자 칼럼 Pastoral column
효도는 마음 중심에서 공경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살찐 고기를 잡수시도록 하여도 벌을 받는 아들이 있고, 아버지를 방앗간에서 일하시도록 해도 상을 받는 아들이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아! 어디서 이런 맛있는 고기를 구했느냐? 참 맛이 있구나!’하고 묻습니다. 노인이 되면 말이 많아지니 자꾸 연거푸 묻습니다. ‘아버님! 잠자코 잡수시기나 하세요. 강아지도 먹을 때는 잠자코 먹는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이렇게 무시하면서 고기를 대접해 드리면 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집안이 가난하니 방앗간에서 일을 하십니다. 그때 나라 임금이 방아꾼인 아버지를 징병합니다. 이때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님, 계속 일하세요.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욕을 당하면 제가 당하고 매를 맞아도 제가 맞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귀중하게 여기고 공경하기 때문에 비록 방앗간에서 일하시게 하여도 상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 중심인 이 사회에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진행하다가 실패하는 일을 많이 봅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부모님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효도는 마음을 주고 부모님을 귀중하게 생각하며 마음 중심에서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아! 어디서 이런 맛있는 고기를 구했느냐? 참 맛이 있구나!’하고 묻습니다. 노인이 되면 말이 많아지니 자꾸 연거푸 묻습니다. ‘아버님! 잠자코 잡수시기나 하세요. 강아지도 먹을 때는 잠자코 먹는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이렇게 무시하면서 고기를 대접해 드리면 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집안이 가난하니 방앗간에서 일을 하십니다. 그때 나라 임금이 방아꾼인 아버지를 징병합니다. 이때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님, 계속 일하세요.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욕을 당하면 제가 당하고 매를 맞아도 제가 맞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귀중하게 여기고 공경하기 때문에 비록 방앗간에서 일하시게 하여도 상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 중심인 이 사회에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진행하다가 실패하는 일을 많이 봅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부모님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효도는 마음을 주고 부모님을 귀중하게 생각하며 마음 중심에서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경외하도록 가르치십시오.

5월의 첫 주일입니다. 5월은 모든 교회가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각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새롭게 발견되어, 뉴욕예본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깃들기를 원합니다.
한 마을에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가정에서 자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 던 형제들이었습니다. 몇 날을 굶주렸는지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형은 동생을 데리고 동네 근처에 있는 과수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누가 오나 잘 보고 있다가 누가 오면 형에게 소리쳐라” 그리고 형은 과수원 주인의 눈을 피해 몰래 사과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다급하게 소리칩니다. “형 누가 보고 있어!” 그러자 형은 가지고 있던 사과를 내 팽개치고 동생의 손을 잡고 막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달린 후에 숨을 몰아쉬며 동생에게 묻습니다. “누가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 예전에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때 그러셨거든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보고 계신다고.”
아이들은 직접적인 교육을 통해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교육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시청각으로 배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모든 자신의 행동에 신중하고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본을 보여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세상이며 평생 삶을 살아가는 기초와 기준을 세우는 곳입니다. 또한 부모님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보여주는 거울과 도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정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기준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거센 물결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기 전에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법을 배운 자녀는 결코 주의 길을 떠나 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예본의 모든 부모님들과 주일학교 교사들, 그리고 성도님들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헌신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마을에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가정에서 자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 던 형제들이었습니다. 몇 날을 굶주렸는지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형은 동생을 데리고 동네 근처에 있는 과수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누가 오나 잘 보고 있다가 누가 오면 형에게 소리쳐라” 그리고 형은 과수원 주인의 눈을 피해 몰래 사과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다급하게 소리칩니다. “형 누가 보고 있어!” 그러자 형은 가지고 있던 사과를 내 팽개치고 동생의 손을 잡고 막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달린 후에 숨을 몰아쉬며 동생에게 묻습니다. “누가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 예전에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때 그러셨거든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보고 계신다고.”
아이들은 직접적인 교육을 통해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교육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시청각으로 배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모든 자신의 행동에 신중하고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본을 보여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세상이며 평생 삶을 살아가는 기초와 기준을 세우는 곳입니다. 또한 부모님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보여주는 거울과 도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정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기준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거센 물결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기 전에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법을 배운 자녀는 결코 주의 길을 떠나 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예본의 모든 부모님들과 주일학교 교사들, 그리고 성도님들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헌신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양온유 학생”

난세엔 언제나 영웅이 있듯이 한국과 전 세계를 비통함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참사에도 진정한 영웅은 있었습니다. 탈출방송이 없어 어린 학생들을 모두 내보내고 쓸쓸히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 여승무원과 제자들을 대피시키다 숨진 단원고 교사 등이 침몰 과정의 영웅이며, 지금도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해 대가없이 시간과 체력을 헌납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한 영웅이 있습니다. 안산명성교회에 출석하며 단원고 2학년인 양온유 학생입니다.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친구들은 온유양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온유는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습니다. 계속 갑판에 남아 있었다면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져 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친구들을 구하고자 다시 선실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양온유 학생은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 동생과 함께 교회 사택에서 지냈습니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더니 중학교에 들어가선 새벽기도 반주를 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지난해 12월부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음악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음악심리상담사가 되겠다며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지난해 1학년 학년대표였고 올해도 2학년 대표 선거를 준비했는데 친구가 출마한다는 말에 양보했습니다. 그러더니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친구를 위해 생존의 기회를 과감히 내던졌습니다. 빈소를 찾은 친구들은 “온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비타민’ 같은 친구였다.”, “너랑 있으면 항상 좋은 기운이 넘쳤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주 주일 안산명성교회의 부활절예배는 눈물바다였다고 합니다. 주보의 십일조 헌금자 명단에 양온유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편의점 알바로 번 돈을 쪼개 수학여행 떠나기 전 헌금한 사실이 이날 주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소녀였습니다.
평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리더자로서 사람들 앞에서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나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부끄러운 모습은 과연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양온유 학생처럼 예수님을 본받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한 영웅이 있습니다. 안산명성교회에 출석하며 단원고 2학년인 양온유 학생입니다.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친구들은 온유양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온유는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습니다. 계속 갑판에 남아 있었다면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져 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친구들을 구하고자 다시 선실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양온유 학생은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 동생과 함께 교회 사택에서 지냈습니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더니 중학교에 들어가선 새벽기도 반주를 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지난해 12월부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음악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음악심리상담사가 되겠다며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지난해 1학년 학년대표였고 올해도 2학년 대표 선거를 준비했는데 친구가 출마한다는 말에 양보했습니다. 그러더니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친구를 위해 생존의 기회를 과감히 내던졌습니다. 빈소를 찾은 친구들은 “온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비타민’ 같은 친구였다.”, “너랑 있으면 항상 좋은 기운이 넘쳤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주 주일 안산명성교회의 부활절예배는 눈물바다였다고 합니다. 주보의 십일조 헌금자 명단에 양온유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편의점 알바로 번 돈을 쪼개 수학여행 떠나기 전 헌금한 사실이 이날 주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소녀였습니다.
평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리더자로서 사람들 앞에서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나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부끄러운 모습은 과연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양온유 학생처럼 예수님을 본받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1957년, 비행 훈련 중이던 공군 중위가 자신이 탑승한 훈련기와 함께 실종되었습니다. 그 중위는 실종된 지 54일 만에 홀로 어느 산중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는 고장 난 비행기에서 낙하한 후 눈이 덮인 황야에서 살아나온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중위가 살아나왔을 때 이미 그는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건에 대한 조사가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파손된 비행기의 잔해를 찾아낼 수 없게 되자 그는 사건 조작의 의혹을 사게 되어 강제로 예편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 극기 훈련 중이던 소년 단원들이 그가 탔던 비행기의 잔해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그의 이야기는 사실로 인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이야기는 아직도 논쟁거리입니다. 그 분께서 주장하시는 모든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에 관한 사건들을 고찰해보십시오. 그 분의 완전하심은 사실에 입각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그 분의 오심을 예언했고, 그 분의 행하신 모든 기적들은 그 분의 신성을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의 목격자들이 그 분의 부활을 증명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해 주십니다.
성경은 예수님 부활에 관하여 사백 번 이상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논쟁의 주제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학문적인 토론의 대상으로 설명한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지난 4월 16일 한국 진도 앞 해상에서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 사건으로 302명의 사망·실종을 기록한 참사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오직 부활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께 기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경기도 안산지역의 각 교회를 위하여, 사망, 실종, 부상자들의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운 심정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돕고 있는 봉사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부활의 소망되시는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이야기는 아직도 논쟁거리입니다. 그 분께서 주장하시는 모든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에 관한 사건들을 고찰해보십시오. 그 분의 완전하심은 사실에 입각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그 분의 오심을 예언했고, 그 분의 행하신 모든 기적들은 그 분의 신성을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의 목격자들이 그 분의 부활을 증명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해 주십니다.
성경은 예수님 부활에 관하여 사백 번 이상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논쟁의 주제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학문적인 토론의 대상으로 설명한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지난 4월 16일 한국 진도 앞 해상에서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 사건으로 302명의 사망·실종을 기록한 참사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오직 부활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께 기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경기도 안산지역의 각 교회를 위하여, 사망, 실종, 부상자들의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운 심정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돕고 있는 봉사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부활의 소망되시는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남북전쟁 때 한 젊은 농부가 북군의 징집영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부인이 죽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자녀들을 부양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 마침 같은 동네에 사는 부양가족이 없는 친구가 그 농부를 대신해서 전쟁에 나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농부를 대신해 전쟁에 나간 그 친구는 첫 번째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농부는 전장으로 달려가 친구의 시체를 찾아서 마을 교회의 묘지에 안장하고, 비석에 “나를 대신해서 죽다.”라고 썼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복음의 진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이 진리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고 고백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삶 속에서 행한다면 우리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며, 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는 고백이 고난 주간에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눈을 고정하시고, 나의 소리를 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에 경건훈련으로 하루 1장 성경읽기, 하루 5장 찬양, 하루 30분 기도, 힘들지만 고난주간 동안 하루 한 끼씩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생활훈련으로 문화시간 줄이기(TV, 컴퓨터 등), 좋아하는 음식 참기, 떨어져 있는 또는 오래 못 만난 가족과 친척에게 안부 전하기, 혹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과 관계 개선 노력하기, 운동하기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복음의 진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이 진리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고 고백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삶 속에서 행한다면 우리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며, 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는 고백이 고난 주간에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눈을 고정하시고, 나의 소리를 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에 경건훈련으로 하루 1장 성경읽기, 하루 5장 찬양, 하루 30분 기도, 힘들지만 고난주간 동안 하루 한 끼씩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생활훈련으로 문화시간 줄이기(TV, 컴퓨터 등), 좋아하는 음식 참기, 떨어져 있는 또는 오래 못 만난 가족과 친척에게 안부 전하기, 혹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과 관계 개선 노력하기, 운동하기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최선을 다하는 삶”

어떤 학생이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철야기도에만 힘썼습니다. 밤새도록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시험 시간을 맞았습니다. 시험문제를 보미 전혀 답을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한참을 그냥 붙들고 있다가, “그래도 백지로 낼 바엔.” 하면서, 궁여지책으로 “교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써 놓고 교실을 나왔습니다. 시험지를 회수한 교수는 우습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기막힐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학생의 답안지에 이러한 채점 기록을 남겼습니다. “학생은 F, 하나님은 A+” 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이지만, 학생은 아무 것도 모르니 0점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요행심리입니다. 최선을 다한 후 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한 최선을 보시고 30배, 60배, 100배의 결과를 주십니다.하나님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100배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최선을 다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고백은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삶의 최고의 고백은 “이 땅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고백을 늘 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삶의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마땅한 우리의 삶의 자세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모든 성도님들이 최선을 삶을 살기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에 최선을 다하고,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성경 읽기에 최선을 다하고, 봉사와 헌신에 최선을 다하고,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직장과 사업장과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장해 주시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듯이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요행심리입니다. 최선을 다한 후 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한 최선을 보시고 30배, 60배, 100배의 결과를 주십니다.하나님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100배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최선을 다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고백은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삶의 최고의 고백은 “이 땅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고백을 늘 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삶의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마땅한 우리의 삶의 자세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모든 성도님들이 최선을 삶을 살기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에 최선을 다하고,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성경 읽기에 최선을 다하고, 봉사와 헌신에 최선을 다하고,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직장과 사업장과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장해 주시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듯이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과정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된 기다림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기도하며 기다림 속에서의 기도제목들 가운데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주일학교 학부모님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었습니다. 또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소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의 각 부서마다 불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요소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못할 때, 이는 낙심과 좌절의 시간이 됩니다.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다시 점검하고, 또 우리의 목적과 비전을 그 분과 일치시키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지체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적 영역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새의 수정란은 부화 기간 동안 성숙해지고, 마침내 새끼 새로 부화합니다. 원래 새는 알을 낳으면 그 알을 부화하기 위해 그 알 위에 앉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을 품는 새는 가슴 깃털 아래, 곧 깃털이 없는 곳에 알들을 품습니다. 깃털이 없는 그 곳은 혈관의 조직이 표면 가까이에서 열을 발생하기 때문에 새의 몸에서 가장 따뜻한 곳입니다. 이 열은 어미 새로부터 알들에게 곧바로 전해집니다. 어미 새의 기다림은 의도적입니다. 기다림은 결과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과정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미 새가 알들 위에 앉아 있을 때, 태아는 완전한 형태의 새끼 새로 자랍니다. 새끼 새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면 부화될 것입니다. 시간이 채워졌을 때 병아리는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된 기다림의 기간을 기도의 과정에 집어넣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최선의 결과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에게 부화의 시간이 필요 없었다면, 거기에는 기다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순절 기간 동안 하나님의 계획된 기다림은 기도의 과정을 속에 있음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요소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못할 때, 이는 낙심과 좌절의 시간이 됩니다.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다시 점검하고, 또 우리의 목적과 비전을 그 분과 일치시키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지체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적 영역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새의 수정란은 부화 기간 동안 성숙해지고, 마침내 새끼 새로 부화합니다. 원래 새는 알을 낳으면 그 알을 부화하기 위해 그 알 위에 앉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을 품는 새는 가슴 깃털 아래, 곧 깃털이 없는 곳에 알들을 품습니다. 깃털이 없는 그 곳은 혈관의 조직이 표면 가까이에서 열을 발생하기 때문에 새의 몸에서 가장 따뜻한 곳입니다. 이 열은 어미 새로부터 알들에게 곧바로 전해집니다. 어미 새의 기다림은 의도적입니다. 기다림은 결과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과정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미 새가 알들 위에 앉아 있을 때, 태아는 완전한 형태의 새끼 새로 자랍니다. 새끼 새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면 부화될 것입니다. 시간이 채워졌을 때 병아리는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된 기다림의 기간을 기도의 과정에 집어넣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최선의 결과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에게 부화의 시간이 필요 없었다면, 거기에는 기다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순절 기간 동안 하나님의 계획된 기다림은 기도의 과정을 속에 있음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

나폴레옹이 흰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실수로 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뒤를 따르던 병사들은 아연실색하여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장군이 말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불길한 징조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넘어졌던 나폴레옹은 바닥에 있던 돌을 주워서 앞을 향해 힘껏 던지며 “적은 저쪽에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부하들은 갑자기 용기백배해졌습니다. 그들은 장군이 돌을 줍기 위해 일부러 말에서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 전투에서 부하들을 독려하여 큰 전과를 올렸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실패자는 또 돌에 걸려 넘어 질까봐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합니다.
누구나 때로 돌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포기해야할 상황까지 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하는 자는 그 돌을 디딤돌로 활용하며 다시 일어나서 승리자가 됩니다.
요즈음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삶이 고달프고 위험한 일들이 빈번히 생기고 더구나 자녀들은 성장하여 자기 갈 곳으로 가고 혼자 성장한 것처럼 부모의 은혜를 모를 때에, 그리고 점점 한국이 잘 살게 되는 이때에 자연히 내가 왜 미국에 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차라리 한국에 있었으면 더 잘 살고 좋았을 텐데 하며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곳 미국이 광야 일 수 있습니다.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교훈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였습니다. 그 교육이 40년이 필요하였습니다. 광야의 길이 아니면 이 귀한 연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시민, 영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사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좀 멀리 보시면 우리의 생각이 바뀝니다. 믿음의 날개를 힘 있게 펴고 창공을 날기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합니다. 독수리의 힘 있는 날개는 강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훈련을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사순절 기간에 기도하며 훈련을 잘 받아서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때로 돌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포기해야할 상황까지 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하는 자는 그 돌을 디딤돌로 활용하며 다시 일어나서 승리자가 됩니다.
요즈음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삶이 고달프고 위험한 일들이 빈번히 생기고 더구나 자녀들은 성장하여 자기 갈 곳으로 가고 혼자 성장한 것처럼 부모의 은혜를 모를 때에, 그리고 점점 한국이 잘 살게 되는 이때에 자연히 내가 왜 미국에 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차라리 한국에 있었으면 더 잘 살고 좋았을 텐데 하며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곳 미국이 광야 일 수 있습니다.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교훈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였습니다. 그 교육이 40년이 필요하였습니다. 광야의 길이 아니면 이 귀한 연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시민, 영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사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좀 멀리 보시면 우리의 생각이 바뀝니다. 믿음의 날개를 힘 있게 펴고 창공을 날기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합니다. 독수리의 힘 있는 날개는 강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훈련을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사순절 기간에 기도하며 훈련을 잘 받아서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에서의 이기는 삶”

배가 고픈 사람이 빵을 사먹었습니다. 한 개를 먹어도, 두 개를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세 개, 네 개, 여섯 개까지 먹어도 뿌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며 그는 일곱 개째의 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배가 불러올라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는 빵을 억지로 입안에 넣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 일곱 번째 빵 하나로 이렇게 배부를 줄 알았다면 괜히 지금까지 여섯 개나 사먹었잖아!”
웬만큼 살게 되면 과거의 처지는 모두 잊어버리고 오히려 불평만 하게 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죄의 사슬에 묶여 있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자유롭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유롭게 되니 과거의 죄의 종이 되었던 처지는 모두 잊어버리고 새롭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과거의 것을 다시 집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과거로 되돌리려고 무단히도 애를 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부어주신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집착하게 합니다. 되도록 더 좋은 음식, 되도록 더 좋은 집, 더 좋은 환경, 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세상을 섬기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오히려 세상의 종이 되어버리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행복을 주겠다고 달콤하게 유혹하여 우리를 파멸 가운데로 이끌며, 끝내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우리를 종으로 삼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탄을 문안에 결코 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유혹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찾아옵니다. 유혹을 뿌리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싸움이 아닙니다. 참으로 큰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겨야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영적인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웬만큼 살게 되면 과거의 처지는 모두 잊어버리고 오히려 불평만 하게 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죄의 사슬에 묶여 있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자유롭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유롭게 되니 과거의 죄의 종이 되었던 처지는 모두 잊어버리고 새롭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과거의 것을 다시 집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과거로 되돌리려고 무단히도 애를 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부어주신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집착하게 합니다. 되도록 더 좋은 음식, 되도록 더 좋은 집, 더 좋은 환경, 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세상을 섬기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오히려 세상의 종이 되어버리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행복을 주겠다고 달콤하게 유혹하여 우리를 파멸 가운데로 이끌며, 끝내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우리를 종으로 삼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탄을 문안에 결코 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유혹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찾아옵니다. 유혹을 뿌리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싸움이 아닙니다. 참으로 큰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겨야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영적인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 많이 흘리세요?”

지난 주 금요일에 어버이들을 모시고 영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을 은혜가운데 관람했습니다. 관람료를 김순희 사모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부하셔서 부담 없이 관람을 하였으며, 관람 후에는 이억채 장로님 댁에 초청받아 정성을 다해 준비한 다과를 맛있게 먹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영화는 성경을 바탕으로, 특별히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잘 표현했습니다. 캄캄한 영화관이라서 그랬는지 관람을 하며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길의 장면에서는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저를 포함해서 많이들 우셨습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실 때 주님을 사랑하던 여인들이 뒤를 따르며 울었다고 했습니다(눅23:27-28). 그런데 심령이 메마른 사람은 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미를 상실한 사람, 정서가 고갈된 사람은 울어야 될 때에 울지를 못합니다. 눈물이 없는 것은 병입니다. 눈물은 마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성시키는 강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눈물은 생애를 바꾸어 줍니다. 주님의 수난의 날을 생각하며 적어도 한 번은 울기 때문입니다.
눈물 없이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눅23:28). 다윗은 눈물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시56:8). 하나님은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 결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시39:12). 언젠가 우리의 눈물을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며 병에 담긴 눈물을 보시고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한 주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 사람을 받은 감격의 눈물은 있었는지요? 내가 죄의 아픔을 고백하는 회개의 눈물은 있었는지요? 내가 이웃을 향한 사랑의 눈물은 있었는지요? 또한, 지난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구원하여 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아끼지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6:21)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계7:17)
‘하나님의 아들’ 영화는 성경을 바탕으로, 특별히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잘 표현했습니다. 캄캄한 영화관이라서 그랬는지 관람을 하며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길의 장면에서는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저를 포함해서 많이들 우셨습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실 때 주님을 사랑하던 여인들이 뒤를 따르며 울었다고 했습니다(눅23:27-28). 그런데 심령이 메마른 사람은 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미를 상실한 사람, 정서가 고갈된 사람은 울어야 될 때에 울지를 못합니다. 눈물이 없는 것은 병입니다. 눈물은 마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성시키는 강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눈물은 생애를 바꾸어 줍니다. 주님의 수난의 날을 생각하며 적어도 한 번은 울기 때문입니다.
눈물 없이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눅23:28). 다윗은 눈물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시56:8). 하나님은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 결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시39:12). 언젠가 우리의 눈물을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며 병에 담긴 눈물을 보시고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한 주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 사람을 받은 감격의 눈물은 있었는지요? 내가 죄의 아픔을 고백하는 회개의 눈물은 있었는지요? 내가 이웃을 향한 사랑의 눈물은 있었는지요? 또한, 지난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구원하여 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아끼지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6:21)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계7:17)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영화 관람하시죠!"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 지난주 금요일(28일)부터 미국 전역에서 개봉하였습니다. 장대하고 웅장한 스케일로 제작된 “하나님의 아들”은 이국적인 해외촬영과 화려하고 인상적인 효과가 더해졌으며, 오스카상에 빛나는 한스 짐머의 오케스트라 음악은 영화의 극적인 느낌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미국 케이블 히스토리 채널에서 10부작 시리즈로 방영됐던 매회 1천만 명 이상이 시청한 <더 바이블(The Bible)>의 제작자 로마 다우니와 마크 버넷 부부 그리고 크리스토퍼 스펜서 감독이 또 한 번 뭉쳐 일찍부터 화제가 됐었습니다.
예수님 역할을 맡은 주인공 역은 <더 바이블>에 출연했던 포르투갈 출신의 영화배우 디오고 모가도(Diogo Morgado)의 연기는 예수님의 소박한 출생으로부터 그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고난, 그리고 부활의 여정의 대서사시를 친근하면서도 인상 깊게 보여줍니다.
영화 ”하나님의 아들”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Passion of the Christ) 이후 10년여 만에 제작된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영화로써 세상 속에 복음의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쓰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성경을 바탕으로 복음의 핵심을 증거하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확실하게 깨닫고 알게 되면, 그 복음을 받아드리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위의 내용을 저절로 알 수 있도록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크리스찬들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복음의 감격과 능력을 체험 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도전을 줄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아들>에 이어 3월 28일(토)부터는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노아>가 개봉될 예정입니다. 이 두 편의 복음적인 영화들을 전도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소개해 주시고 적극 추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본의 모든 성도님들도 시간을 내셔서 이번 달에는 영화 두 편을 꼭 관람을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예수님 역할을 맡은 주인공 역은 <더 바이블>에 출연했던 포르투갈 출신의 영화배우 디오고 모가도(Diogo Morgado)의 연기는 예수님의 소박한 출생으로부터 그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고난, 그리고 부활의 여정의 대서사시를 친근하면서도 인상 깊게 보여줍니다.
영화 ”하나님의 아들”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Passion of the Christ) 이후 10년여 만에 제작된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영화로써 세상 속에 복음의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쓰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성경을 바탕으로 복음의 핵심을 증거하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확실하게 깨닫고 알게 되면, 그 복음을 받아드리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위의 내용을 저절로 알 수 있도록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크리스찬들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복음의 감격과 능력을 체험 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도전을 줄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아들>에 이어 3월 28일(토)부터는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노아>가 개봉될 예정입니다. 이 두 편의 복음적인 영화들을 전도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소개해 주시고 적극 추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본의 모든 성도님들도 시간을 내셔서 이번 달에는 영화 두 편을 꼭 관람을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

김연아 선수가 지난 21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무결점 연기를 펼쳤지만 심판 판정이 석연치 않은 것으로 인해 은메달에 그친 것에 대해 해외 주요 매체들이 점수논란이 지금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상황을 보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김연아 선수는 인터뷰에서 무덤덤하게 말을 했습니다. "전에도 편파 판정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때마다 저보다 주변에서 더 열을 내더라"며 희미하게 웃은 후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 주목받는 많은 대회여서 더 그런 것 같다. 난 그것에 대한 아무 미련도 없다.끝났다는 것에 만족한다. 잘했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순위가 2등으로 떨어졌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로지 금메달 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무덤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는 생각을 하자"라고 했습니다. 젊은 청년이기도 한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작은 자가 아니라 진정한 금메달감이고 큰 자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두 소녀가 사이좋게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들의 눈앞에 큰 조개가 하나 보이자 두 소녀는 서로 자기가 먼저 발견했으니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옹다옹하다가 결국 고집이 센 소녀가 조개를 차지했습니다. 조개를 빼앗긴 소녀는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주은 것 중에 제일 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조개 줍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개를 빼앗겼던 소녀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마음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갈 듯 기뻤습니다. 진주를 가진 소녀는 마음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다시 친구 옆으로 다가가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조개 줍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들 앞에 또 큰 조개가 나타났지만 더 이상 아옹다옹하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가진 소녀가 기꺼이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더 큰 것을 소유한 사람, 진정한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작은 일에 아옹다옹하지 않게 됩니다.
이삭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는데도 아무런 아무 불평 없이 양보를 합니다. 이삭이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물을 포기해도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생명과도 같은 우물을 빼앗는 사람들을 향해 양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삭에게 양보하고 포기하고 희생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우리도 말씀대로 양보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양보하고 희생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어느 두 소녀가 사이좋게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들의 눈앞에 큰 조개가 하나 보이자 두 소녀는 서로 자기가 먼저 발견했으니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옹다옹하다가 결국 고집이 센 소녀가 조개를 차지했습니다. 조개를 빼앗긴 소녀는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주은 것 중에 제일 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조개 줍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개를 빼앗겼던 소녀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마음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갈 듯 기뻤습니다. 진주를 가진 소녀는 마음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다시 친구 옆으로 다가가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조개 줍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들 앞에 또 큰 조개가 나타났지만 더 이상 아옹다옹하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가진 소녀가 기꺼이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더 큰 것을 소유한 사람, 진정한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작은 일에 아옹다옹하지 않게 됩니다.
이삭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는데도 아무런 아무 불평 없이 양보를 합니다. 이삭이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물을 포기해도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생명과도 같은 우물을 빼앗는 사람들을 향해 양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삭에게 양보하고 포기하고 희생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우리도 말씀대로 양보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양보하고 희생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성경 파노라마를 시작합니다."

작년 2월 첫 주부터 지난주까지 48주 동안, 매주 수요저녁예배 시에 성경의 인물 중 100여명에 대하여 강해를 했습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하여 사도바울을 도우며 사역했던 초대교회의 위대한 인물들을 성경의 시대 순으로 배웠습니다. 성경인물 강해를 통하여 그동안 성경을 읽으며 소홀하게 여기며 지나갔던 인물들을 다시 조명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함께하는 인물들을 보았습니다. 먼저 제 자신에게는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함께 참여하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금주부터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눈에 꿰뚫을 수 있도록 성경 66권을 총정리하며 순서대로 연구하는 성경 파노라마를 시작합니다. 참고로 파노라마(panorama)란 넓은 조망(跳望, view)의 뜻으로 높은 시점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아서 얻어지는 시계의 열린 경관 혹은 전경을 말합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백성을 되찾으시려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구약, 신약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맥을 잡아가며,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경 파노라마를 통하여 성경 전체를 일독하게 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본 교회의 올해의 목표중 하나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은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축복의 원천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에 있습니다. 때로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말씀에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지혜가 생기고, 신비한 마음의 평화가 솟고,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아오릅니다. 데오도르 루즈벨트(제26대)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 성경을 좀 더 자세하게, 좀 더 넓게, 좀 더 깊게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수요저녁예배 시에 금주부터 시작하는 성경 파노라마를 통해서 말씀을 내 삶의 안내자로 확실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씀을 사모하며 함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금주부터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눈에 꿰뚫을 수 있도록 성경 66권을 총정리하며 순서대로 연구하는 성경 파노라마를 시작합니다. 참고로 파노라마(panorama)란 넓은 조망(跳望, view)의 뜻으로 높은 시점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아서 얻어지는 시계의 열린 경관 혹은 전경을 말합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백성을 되찾으시려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구약, 신약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맥을 잡아가며,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경 파노라마를 통하여 성경 전체를 일독하게 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본 교회의 올해의 목표중 하나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은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축복의 원천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에 있습니다. 때로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말씀에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지혜가 생기고, 신비한 마음의 평화가 솟고,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아오릅니다. 데오도르 루즈벨트(제26대)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 성경을 좀 더 자세하게, 좀 더 넓게, 좀 더 깊게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수요저녁예배 시에 금주부터 시작하는 성경 파노라마를 통해서 말씀을 내 삶의 안내자로 확실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씀을 사모하며 함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빚진 자의 삶”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미련한 것은 곰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아쉬울 때 사정해서 친구에게 돈을 빌립니다. 그때 그는 아주 고마워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쥐고 있다 보면 내 것 같아서 돌려주기 싫어집니다. 강력하게 되돌려 달라고 하게 되면 그 고마웠던 사람과는 쉽게 원수가 되고 맙니다. 그 후 다시는 신용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빚진 자입니다. 한 없이 고마워해야 할 인간이 고마운 마음이 식게 되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받은 것까지 빼앗기고 슬피 우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신 은혜를 제대로 간직하려면 하나님께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인덕이 없어.’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잘 해 주었는데도 손해를 보고 산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 사람은 밑지고 산다는 이야기입니다.심지어 하나님에게도 같은 생각을 품고 삽니다. “하나님 너무 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여기에서 빚진 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빚 받아야 할 사람의 모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빚 진자의 생각이 그로 하여금 사도가 되게 한 것입니다. 부모에게 빚진 자의 생각은 효도를 만들고, 부부가 서로 빚 진자의 생각을 가질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뗄 수 없는 생명적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복음의 빚이 있고 사랑의 빚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삶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사랑에 빚진 자로서 채무의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빚진 자입니다. 한 없이 고마워해야 할 인간이 고마운 마음이 식게 되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받은 것까지 빼앗기고 슬피 우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신 은혜를 제대로 간직하려면 하나님께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인덕이 없어.’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잘 해 주었는데도 손해를 보고 산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 사람은 밑지고 산다는 이야기입니다.심지어 하나님에게도 같은 생각을 품고 삽니다. “하나님 너무 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여기에서 빚진 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빚 받아야 할 사람의 모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빚 진자의 생각이 그로 하여금 사도가 되게 한 것입니다. 부모에게 빚진 자의 생각은 효도를 만들고, 부부가 서로 빚 진자의 생각을 가질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뗄 수 없는 생명적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복음의 빚이 있고 사랑의 빚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삶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사랑에 빚진 자로서 채무의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장학 사업은 많은 결실을 언약 받는 좋은 투자입니다.”

금일 주일 낮 예배 시에 7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수여식을 합니다. 수여 대상 학생들은 당회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입니다. 그리고 당회에서는 매년 상, 하반기로 2회 수여하던 장학금을 올해는 상반기 1회만 수여하기로 하였습니다. 2014년도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 학생들에게 우리의 작은 정성이 담긴 장학금은 이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장학금을 수여받는 학생들은 학업과 사역에 열심히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미래의 주인공들과 함께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 가지 교회형편으로 제대로 돕지도 못했는데, 이번 장학금을 통해 조금이나마 도우며 격려하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학업과 사역을 위해서 계속적인 기도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본 교회가 장학금을 수여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우리 교회의 미래에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당장은 열매를 볼 수 없을 찌라도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열매로 돌아 올 것입니다. 이들 학생들이 각계 분야에서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그 재능에 따라 양성하며,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돕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사역입니다.
본 교회가 장학 사업을 더욱 발전하여 교회 내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학생들을 돕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을 교육하고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는 노령화되어서 유럽 교회나 미국 교회처럼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교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사역자를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는 지도자가 없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중요성을 알기에 본 교회에서는 장학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교회, 남의 필요를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특별히 장학 사업은 많은 결실을 언약 받는 좋은 투자입니다. 아울러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이 사역에 함께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가정과 사업위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본 교회가 장학금을 수여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우리 교회의 미래에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당장은 열매를 볼 수 없을 찌라도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열매로 돌아 올 것입니다. 이들 학생들이 각계 분야에서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그 재능에 따라 양성하며,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돕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사역입니다.
본 교회가 장학 사업을 더욱 발전하여 교회 내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학생들을 돕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을 교육하고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는 노령화되어서 유럽 교회나 미국 교회처럼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교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사역자를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는 지도자가 없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중요성을 알기에 본 교회에서는 장학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교회, 남의 필요를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특별히 장학 사업은 많은 결실을 언약 받는 좋은 투자입니다. 아울러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이 사역에 함께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가정과 사업위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예수님 믿고 천국 갑시다.”하는 말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표어이며 또한 인사입니다. 예수님 믿는 기독교인은 천국에 가고, 예수님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은 지옥에 갑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시애틀 마스힐처치(Mars Hill Church) 담임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 목사님은 지난 10일에 자신의 트위터에 "비기독교인은 지옥에 간다."는 글을 남겨 온라인 이용자들 사이에 큰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비기독교이라면, 지옥에 간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게 아니다. 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 없는 것이다"(If you are not a Christian, you are going to hell. It's not unloving to say that. It's unloving to not say that.)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을 본 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은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동의하기도 했고, "끔찍한 방식으로 신의 말을 전한다."고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진리가 진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극장에 코미디를 구경하러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그때 코미디언이 나와서 침착하게 알리기를, “여러분, 이 극장에서 지금 화재가 발생했으니 빨리 질서 있게 나가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참 잘 웃긴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자 코미디언이 다시 나와서 정말이라고 심각하게 말했지만, 여전히 잘 웃긴다며 웃고 있다가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일이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람들이 여전히 농담으로 여기고 웃고만 있다가 모두들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바로 우리의 가족, 친구, 동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옥이 없다고 우겨 봅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있다면 자기들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있는 지옥을 없다고 우겨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과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속히 회개하고 천국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시애틀 마스힐처치(Mars Hill Church) 담임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 목사님은 지난 10일에 자신의 트위터에 "비기독교인은 지옥에 간다."는 글을 남겨 온라인 이용자들 사이에 큰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비기독교이라면, 지옥에 간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게 아니다. 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 없는 것이다"(If you are not a Christian, you are going to hell. It's not unloving to say that. It's unloving to not say that.)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을 본 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은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동의하기도 했고, "끔찍한 방식으로 신의 말을 전한다."고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진리가 진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극장에 코미디를 구경하러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그때 코미디언이 나와서 침착하게 알리기를, “여러분, 이 극장에서 지금 화재가 발생했으니 빨리 질서 있게 나가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참 잘 웃긴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자 코미디언이 다시 나와서 정말이라고 심각하게 말했지만, 여전히 잘 웃긴다며 웃고 있다가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일이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람들이 여전히 농담으로 여기고 웃고만 있다가 모두들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바로 우리의 가족, 친구, 동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옥이 없다고 우겨 봅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있다면 자기들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있는 지옥을 없다고 우겨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과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속히 회개하고 천국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훈련을 통해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사랑

새벽예배에서 출애굽기를 강해하며 모세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모세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사랑을 나타나실 때 모든 것을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 교제를 하며 보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영적 교제의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진보의 기간은 각자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전에 준비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열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위하여 훈련하며 가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찰스 코우먼 여사는 곤충학자입니다. 그녀는 나방이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는데 나방이 너무 작은 구멍에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그 몸부림이 너무도 안타까워 번데기를 가위로 잘라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방은 쉽게 구멍에서 나왔는데, 나온 나방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한쪽 구석으로 비실비실 걸어서 가더니 그만 주저 않고 맙니다. 그때 찰스 코우먼 여사는 깨달았습니다. 좁은 구멍을 나오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 몸부림이 날개에 힘을 주어 나방으로 하여금 날게 하는구나! 아 나는 값싼 동정으로 한 나방을 영원히 날지 못 못하게 만들고 말았구나!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는 긴 시간의 몸부림, 이것은 꽃을 찾아 이 산 저 산 날아다닐 행복한 나비가 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하며 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모세는 호렙산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40년을 하나님의 학교에서 공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편하고 쉬운 삶은 없습니다. 그렇게 삶이 힘든 것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와 같이 힘든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발을 질질 끌고 기어 다니는 나비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에 모세와 같이 쓰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 교제를 하며 보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영적 교제의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진보의 기간은 각자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전에 준비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열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위하여 훈련하며 가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찰스 코우먼 여사는 곤충학자입니다. 그녀는 나방이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는데 나방이 너무 작은 구멍에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그 몸부림이 너무도 안타까워 번데기를 가위로 잘라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방은 쉽게 구멍에서 나왔는데, 나온 나방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한쪽 구석으로 비실비실 걸어서 가더니 그만 주저 않고 맙니다. 그때 찰스 코우먼 여사는 깨달았습니다. 좁은 구멍을 나오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 몸부림이 날개에 힘을 주어 나방으로 하여금 날게 하는구나! 아 나는 값싼 동정으로 한 나방을 영원히 날지 못 못하게 만들고 말았구나!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는 긴 시간의 몸부림, 이것은 꽃을 찾아 이 산 저 산 날아다닐 행복한 나비가 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하며 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모세는 호렙산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40년을 하나님의 학교에서 공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편하고 쉬운 삶은 없습니다. 그렇게 삶이 힘든 것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와 같이 힘든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발을 질질 끌고 기어 다니는 나비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에 모세와 같이 쓰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멋있는 헤이든 시장과 산파 십브라와 부아”

텍사스 주 댈러스 인근의 소도시 플라워 마운드의 시장이 2014년을 ‘성경의 해’(The year of the Bible)로 제정했습니다. 톰 헤이든 시장은 “여러분이 나와 함께 2014년을 ‘성경의 해’로 선포하고 모든 주민이 성경에서 삶의 원칙과 가르침을 찾길 권한다”고 밝혔습니다. 헤이든 시장은 “성경의 해(www.thebible2014.com)”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이를 통해 매일 읽을 성경구절과 각종 묵상들, 성경에 대한 소개 글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헤이든 시장은 “미국이 세워지도록 한 도덕성은 성경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그런 가치로부터 멀어져 왔지만, 나는 이제 그 가치로 돌아가자고 격려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결정에 비난과 반대도 극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기에 ‘정말 멋있는 시장님이시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미국이 복음의 불씨가 살아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애굽 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하여 남아살해 정책을 계획하고 이를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지시합니다. 그러나 산파들에게는 애굽왕 바로가 부여하는 어떤 명령보다 하나님의 뜻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역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두 산파의 지혜와 용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는 이어질 수 있었고, 비록 산파였지만 성경에까지 그 이름이 기록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멋있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주님이 살아계시고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눈을 천국에 고정시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돈과 명예에 친구와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매여서 주님을 저버리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고통이나 유혹이 와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현실과 세상의 눈치 보며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언약의 백성처럼 살아야 합니다. 올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한 헤이든 시장과, 하나님을 두려워한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본받아 실천하여 정말 멋있는 예본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애굽 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하여 남아살해 정책을 계획하고 이를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지시합니다. 그러나 산파들에게는 애굽왕 바로가 부여하는 어떤 명령보다 하나님의 뜻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역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두 산파의 지혜와 용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는 이어질 수 있었고, 비록 산파였지만 성경에까지 그 이름이 기록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멋있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주님이 살아계시고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눈을 천국에 고정시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돈과 명예에 친구와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매여서 주님을 저버리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고통이나 유혹이 와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현실과 세상의 눈치 보며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언약의 백성처럼 살아야 합니다. 올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한 헤이든 시장과, 하나님을 두려워한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본받아 실천하여 정말 멋있는 예본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14년도 표어, 성구, 찬송

◎표어:“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
◎성구: 고린도후서 5장 17절
◎찬송: 445장(통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2014년도 교회에 주신 표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고후5:17)입니다. 모든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단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에'라는 '연합', '교제', '연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며 그리스도와 날마다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을 누리는 새 사람을 의미합니다(엡 4:24).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는 삶의 가치와 판단 기준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 은혜 안에서 자신을 위해 살았던 모습을 회개하고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은 자신의 모습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며, 생활이 달라집니다. 마치 결혼 전에는 자기 뜻대로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남편의 뜻대로 살듯이, 이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한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즉, 공부를 하는 것도 잘해서 예수님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하고, 사업을 하는 것도, 사역과 봉사를 하는 것도 예수님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해야 합니다. 포도 열매는 혼자 달려 있는 법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서로서로 연합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안에서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중심으로, 결단과 행함으로, 원칙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 때 주님의 능력으로 열매가 내 삶에 맺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올 한해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변함없이 헌신하시며 수고하시는 성도님들의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누리시는 2014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성구: 고린도후서 5장 17절
◎찬송: 445장(통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2014년도 교회에 주신 표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고후5:17)입니다. 모든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단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에'라는 '연합', '교제', '연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며 그리스도와 날마다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을 누리는 새 사람을 의미합니다(엡 4:24).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는 삶의 가치와 판단 기준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 은혜 안에서 자신을 위해 살았던 모습을 회개하고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은 자신의 모습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며, 생활이 달라집니다. 마치 결혼 전에는 자기 뜻대로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남편의 뜻대로 살듯이, 이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한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즉, 공부를 하는 것도 잘해서 예수님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하고, 사업을 하는 것도, 사역과 봉사를 하는 것도 예수님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해야 합니다. 포도 열매는 혼자 달려 있는 법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서로서로 연합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안에서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중심으로, 결단과 행함으로, 원칙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 때 주님의 능력으로 열매가 내 삶에 맺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올 한해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변함없이 헌신하시며 수고하시는 성도님들의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누리시는 2014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